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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녹턴

​경찰과 괴도 x 웅앵

위이이잉. 새벽 공기를 가르고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도심 한가운데 드높게 선

은회색 빌딩의 모든 층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상공에서는 빌딩을 향해 조명을 킨 채로 경찰헬기 여러 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빌딩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수십명의 경찰들이 신속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경찰이 1층 라운지 안으로 들어선 직후 무전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현재 1팀, 정문을 통해 진입했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3팀 미야무라다. 조금 전 엘리베이터를 정지시켰으니까 정각 전까지 정문과 바깥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해!]

 

 

 

단단히 무장한 경찰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 즉시 경계태새를 갖췄다. 가뜩이나 수면부족을 달고사는데 새벽부터 이게 뭔 소란이냐 싶었다. 젠장, 빨리 집에 가서 잠이나 푹 자고싶다. 일제히 같은 생각이 머릿 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피곤에 찌든 눈으로 무전기와 주위를 번갈아 보고있자니 무전기에서 또다시 잡음이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1팀, 들리나? 현재 15층에서 대기 중이던 2팀이 응답이 없다. 빠른 확인 바란다.]

 

“또 뭐야 대체?”

 

“무전기 고장난거 아니에요? 저번에도 무전기 얼어서 고장났다면서요.”

 

“아씨.... 막내야, 네가 여분으로 무전기 하나 갖고있지? 그거 들고 가봐라.”

 

“제...제가요?”

 

“그럼 여기 막내가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나도 내가 막내인거 몰라서 물은게 아니거든요? 짜증나서 죽겠지만 어쩌겠는가.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스즈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다녀올게요.... 만성 피로에 갈라진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만일을 대비해 엘리베이터는 정지시켜놓은 상태였으니 꼼짝없이 계단으로 15층까지 올라가게 생겼다.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다리가 고통으로 울부짖는 미래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이러라고 튼튼하게 낳아주신건 아니었겠지만.

 

 

 

‘맨날 막내, 막내 거리면서 부려먹고... 내년이면 막내 탈출이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야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피 맛이 올라올 즈음, 스즈키의 눈에 15층의 간판이 비쳤다. 오늘따라 그렇게 반가운 간판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상계단 출입구의 문을 열어재끼고 조금 밝아진 얼굴로 무전기를 꺼내든 스즈키의 앞에 펼쳐진 정경은, 결코 기쁨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바, 반장님?”

 

 

 

10층 홀을 가득 메운 정체불명의 새하얀 연기 속에서 쓰러친 채로 널려있는 경찰들의 모습에 스즈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연기 속에 쓰러져있는 반장에게로 달려갔다. 반장은 기절했다기보다는, 이 정체모를 가스를 들이키고 잠에 푹 빠진 듯 보였다.

 

그보다, 누가 이런 짓을 한거지? 아무리 스즈키가 눈치가 없기로 유명하다지만 이번만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설마, 무전이 되지 않는다던게...

 

좋지않은 예감에 스즈키가 허리춤에 차고있던 무전기를 재빠르게 꺼내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정체모를 물체가 날아들어 무전기에 내리꽂혔다. 스즈키의 손에서 빠져나간 무전기는 공중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연기 속 어딘가로 굴러떨어졌다. ....망했네.

 

 

 

“안녕?”

 

“허억....!”

 

 

 

장난끼가 다분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오자 스즈키가 파드득거리며 몸을 털어냈다. 흐하항, 진짜 웃기다 너. 어린아이같은 청량한 웃음소리에 스즈키가 벙찐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긴장했던게 무색할만큼 작은 체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툭 치면 와앙하고 울 것 같다고 해야하나?

 

뿐만 아니라 남자의 조그마한 얼굴을 뒤덮은 방독면은 정말, 그 남자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괴랄한 모양새였다. 아니 그보다.

 

스즈키는 순간 사고력 저하가 된 자신의 뉴런을 비난했다. 영하 10도의 추위에 몸뿐만 아니라 뇌도 얼어버린 모양이었다. 민간인 출입통제 중인 빌딩 안에, 방독면을 쓰고 나타난 남자. 그리고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수트. 어딜 어떻게 보아도 ‘그 남자’다.

 

 

 

“그, 그쪽이 사미....인가?”

 

“으응~ 뭐 그렇지.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막내인가?”

 

 

 

꽤 귀엽잖아. 얼굴이 제법 취향이랄까. 사미가 푸스스 웃으면서 스즈키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당황스러움에 스즈키는 온 몸이 냉동빔에 맞은것 마냥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는 사이 사미의 몸이 코 앞까지 바짝 붙어와있었다. 경직된 팔을 살포시 잡고 사미가 느릿하게 속삭였다.

 

 

 

“나랑 놀자. 내가 잘해줄게.”

 

“염병 떨지말고 떨어지시지.”

 

 

 

안 그러면 그 가느다란 손목에 잘 어울릴 은팔찌를 채워줄거거든. 사미의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스즈키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목소리는...! 사미는 피식 웃으며 스즈키의 팔을 붙들었던 손을 떼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올렸다.

 

 

 

“꽤 늦었잖아, 오늘은. 한참을 기다렸네.”

 

“지금 몸살감기라서 말이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는데 꽤 걸렸지.”

 

“그랬구나아~ 그러면 연락을 미리 주지 그랬어?”

 

 

 

쇼군 때문에라도 다른 날짜로 예고장을 보냈을텐데. 그러자 사쿠라이의 잘생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 호칭 그만 썼으면 좋겠는데. 쓸데없이 친근해 보이잖아.

 

둘 사이에 오가는 말들에 스즈키가 의아한 눈치로 둘을 번갈아봤다. 아니... 그 일상적인 대화부터가 이미 친근해 보입니다만. 경찰과 범죄자의 사이라기엔 일반적인 친구 사이보다 더하지 않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마냥 츳코미를 걸고 싶어졌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으므로 다급하게 사쿠라이에게 SOS를 쳤다.

 

 

 

“사쿠라이 반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걱정마라, 스즈키. 우린 오늘이야말로 이 좀도둑을 감방에 처넣고 성대한 회식을 치를거니까 말야.”

 

“그래, 이제는 좀 잡을 때도 됐잖아. 몇 번째야 이게.”

 

“넌 입 다물어. 너 때문에 들인 인력과 경비 예산이 얼마인줄 알기나 해?”

 

“당연히 알지. 모르면 괴도 체면이 안 서잖아.”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는데 써먹어야 하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미의 손에서 공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주위를 새하얀 연기가 뒤덮었다. 마치 새하얀 눈폭풍이 몰아치는듯 했다.

 

 

 

“윽, 스즈키! 숨 쉬지마! 최면가스다!”

 

 

 

알고는 있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반장님도 생물학적으로 저랑 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졌을텐데 인간이 숨을 안쉬고 배겨요? 저는 아가미로 숨쉬는 물고기가 아니란 말입니다.....까지 생각한 것을 끝으로, 스즈키의 의식이 흐려졌다.

 

묵직한 신체가 바닥에 엎어지는 소리에 사쿠라이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연기 속을 헤집었다.

 

온통 새하얀 연기 투성이라 눈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아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곤란했다.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침착하게 행동하며, 자리를 이탈하는 일이 없어야 했다.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저 멀리로 뛰어가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쪽 방향. 저긴 창가 쪽인가? 사쿠라이는 직감적으로 거대한 유리창 쪽으로 뛰어갔다. 그 순간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뼛속까지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윽....!”

 

 

 

가뜩이나 몸살감기 탓에 으슬으슬한 몸을 끌어안고 사쿠라이가 기둥 뒤에 숨었다. 바람이 건물 내로 들이닥치며 연기가 빠져나가는 덕분에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져갔다. 유리조각과 눈이 뒤엉켜 휘날리는 가운데 한 남자가 고요하게,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사미였다.

 

그는 달빛을 조명삼아 서서, 제 손에 들린 열대의 물처럼 푸른 보석을 달빛에 비추어 보고있었다. 잡으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오늘만큼은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다지고 사쿠라이가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람이 몰아치고 프로펠러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박살난 유리창 앞에 헬기 한 대가 나타났다. 외관은 경찰헬기인 듯 보였지만 안에 운전대를 잡고있는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설마 경관이 바꿔치기 당한건가?

 

유리창에 헬기가 바짝 붙어오고, 사미가 그 쪽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있었다.

 

이대로면 영락없이 놓치고 만다.

 

 

 

“잠깐...! 기다려!”

 

 

 

이대로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또, 여기서 놓칠건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달라야 했다. 보석을 놓치더라도 하다못해 그를 잡을 수라도 있다면. 얼굴에 쓰고있던 방독면을 집어던지고 사쿠라이가 사미에게로 달려들었다.

 

 

 

“쇼군!”

 

 

 

사미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사쿠라이의 몸이 기울었다. 무척 당혹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왜 저런 얼굴을 짓는거지? 의아함에 누가 답해줄 틈도 없이. 어라? 바닥에 쏟아져있던 유리조각 들이 신발 틈새에 끼어 미끄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발목이 꺾이고 중심을 잃은 몸이 유리조각 위로 향했다.

 

털썩.

 

틀림없이 유리조각이 안면에 직격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쿠라이의 얼굴에 맞닿은 것은 폭신한 무언가였다.

 

 

 

“큰일날뻔했잖아.”

 

 

 

머리 위에서 사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걱정이 듬뿍담긴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나를, 구해준건가?

 

시선을 돌리자 넘어지는 자신을 감싸안은 것으로 추정되는 팔 한쪽에, 유리조각들이 심하게 박혀있었다.

 

 

 

“너 팔이...!”

 

“다행이다, 안 다쳤네. 깜짝 놀랐어.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오니까....”

 

“그게 아니라 너 팔에 유리조각이 박혔잖아!”

 

 

 

팔에 유리가 박힌 것 쯤이야 별거 아니라는 듯 해맑은 얼굴로 사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신 네 얼굴이 무사하잖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도 모자랄 얼굴인데. 자신의 팔보다는 사쿠라이의 얼굴이 더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쿠라이가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지르며 사미의 팔을 붙들었다.

 

 

 

“지금 그깟게 중요해!? 네 팔이 다쳤다니까!”

 

“팔은 치료하면 금방인걸.”

 

 

 

벽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기분이다. 말이 전혀 통하질 않았다. 사쿠라이가 입술을 짓씹고 사미를 노려보았다. 그는 옷에 들러붙은 유리조각들을 털어내고 제 팔을 붙들고 있던 사쿠라이의 손을 떨구었다.

 

헬기 조명 빛을 등지고 그가 말 없이 사쿠라이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오늘 즐거웠어, 쇼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영문모를 한마디를 남기고, 사미는 그렇게 헬기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 캐롤이 흐르고, 눈 덮인 수풀 위에 알록달록한 전구가 저마다의 색으로 도시를 빛낸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미소를 나누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걸어가는 가운데 살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정말 여기로 오는거에요? 완전 도시 한가운데인데. 피할데도 없고.”

 

“난들 어떻게 알아. 지가 온다잖아.”

 

 

 

미야무라가 크게 재채기를 하고 코를 훌쩍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가족들과 파티를 즐겨도 모자랄 판에 출근이라니 이게 웬말이람. 이게 다 그 얼어죽을 좀도둑 때문이야.

 

 

 

“몇개월동안 잠잠하더니 갑자기 예고장을 보내는건 또 무슨 경우고? 참내. 어디서 깩하고 죽었나 했는데.”

 

“모아둔 돈을 다 썼나보죠 뭐.”

 

“사회에 공헌은 못할망정! 이래서 도둑은 싫다니까.”

 

“...완전 설레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지만요.”

 

 

 

우즈이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예고장의 복사본을 몇 번이고 훑어보며 사쿠라이가 피실피실 웃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팔자도 좋네. 누가보면 러브레터를 받은 사람인줄 알겠어. 미야무라는 재수가 털린다며 패딩을 더 꼼꼼히 여맸다.

 

새벽에 갑자기 불려나와서 피곤해 죽어가는 경찰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행복하게 웃고있는건 저 인간 뿐일거다. 욕인가 싶은 말을 내뱉으며 미야무라가 사쿠라이의 등을 팡팡 쳤다.

 

 

 

“야, 입꼬리 찢어지겠다. 어? 표정관리 안하지?”

 

“하하...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그만.”

 

“좋긴 얼어죽을. 예고장 때문에 집도 못가고 이 추위에 밖에서 떨고있는데.”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됐거든요.”

 

“누구 얘기야, 그건?”

 

 

 

글쎄요. 영문모를 말을 내뱉고는 사쿠라이의 시선이 예고장으로 되돌아갔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00시 00구에 위치한 시계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훔치러 가겠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를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을 만날 수 있어. 설레임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약속의 시간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초침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예고장의 복사본을 웃옷 안주머니에 잘 넣어두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30초 전이었다.

 

당신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오랜만이라고 할까? 보고 싶었다고 할까? 아니면,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귀애한다고 할까?

 

만약 당신을 진짜 잡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머릿 속이 고민으로 가득찼다. 기쁨과 동시에 마주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괜찮아. 잘할 수 있어. 눈을 감고 생각을 비운다.

 

30, 29, 28....

 

어디선가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경찰들이 숨을 죽였다. 시계탑 꼭대기에서는 미야무라와 사쿠라이가 자세를 낮추고 입으로 시간을 셌다.

 

그가 올 시간이었다.

 

10,

 

9,

 

8,

 

7,

 

6,

 

5,

 

4,

 

3,

 

2,

 

1.

 

땡.

 

 

 

철컹.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무섭게, 도시의 모든 불이 일제히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일에 주위에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야? 불이 꺼졌는데? 암흑으로 뒤덮여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해 어둠이 눈에 익어갈 때 즈음, 어디선가 구둣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추고 시간이 멈추고 공기 흐름까지 멈춘 듯 느껴지는 그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구둣소리만이 울려퍼져나갔다.

 

 

 

“....오랜만이야. 쇼군.”

 

 

 

달빛을 온몸에 휘감은 남자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시계탑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사쿠라이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저기에 있어.

 

남자는 자신의 손을 들어 사쿠라이의 손을 잡아들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위에 입을 맞춘다.

 

마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다루듯이.

 

 

 

“약속한 대로 가지러 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걸 말야.

 

 

그리고 괴도가, 부드럽게 웃었다.

 

 

 

 

 

 

[9시 뉴스입니다. 오늘 새벽, 5시 40분경 한 오피스텔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어...]

 

“어떻게 하루도 안질리고 우울한 뉴스만 나오냐.”

 

 

 

컵라면을 후루룩 들이키던 미야무라가 혀를 쯧쯧 찼다. 국물이 반쯤 남은 라면을 내려놓고 물을 한컵 들이키는 모습이 무척 익숙해 보였다. 우즈이는 미야무라의 라면 위에 동동 띄워져있는 오뎅을 슬쩍 집어먹으며 핀잔을 던졌다.

 

 

 

“반장님 같으시면 즐거운 뉴스가 궁금하시겠어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게 끌리는거지.”

 

“안그래도 우중충한 세상인데 즐거운 뉴스 하나 더 늘어나는게 뭐가 어때서?”

 

 

 

내 오뎅 그만 뺏어먹어라. 다시 오뎅 쪽으로 향하는 우즈이의 나무젓가락을 쳐내며 미야무라가 컵라면을 집어들었다. 후루루룩. 게걸스럽게 먹어대면서도 미야무라는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에, 도둑질에. 아주 지랄염병을 떨어요.”

 

“도둑질하니, 그 사람도 최근 안보였죠.”

 

 

 

챙강. 사쿠라이가 아, 하고 당황한 듯 감탄사를 흘렸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다가 떨어진 쇠컵이 물이 고인 바닥 위를 굴러다녔다.

 

우즈이가 물웅덩이를 한번 내려다봤다가 사쿠라이를 보고 깨달은 듯 박수를 쳤다.

 

 

 

“맞아. 사쿠라이 선배가 사미 담당이셨죠? 요새 어때요? 완전 잠적해버렸다면서요?”

 

“어? 어.... 뭐 말이 괴도지 결국 같은 인간이니까. 개인사가 있겠지.”

 

“소문에는 죽었다잖아요. 위험한 건수라도 잡은건지.”

 

 

 

사쿠라이가 쇠컵을 주워들며 헛웃음을 흘렸다. 거기까지 소문이 다 난 모양이네...

 

바닥에 걸레질을 하면서도 우즈이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사미’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던 한 명의 괴도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종적을 감췄다.

 

값비싼 물건들만 노린다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업적을 남기며 도둑질을 해대던 그는 4개월 전 보낸 예고장을 마지막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지 세간에 소문만 조용히 돌 뿐이었다. 그는 죽었다라고.

 

물론 사쿠라이는 그것이 터무니 없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이 주장을 완전히 신뢰하지도 않았다. 소문은 결국 소문일뿐이고 진실은 밝혀지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엇다.

 

무엇보다 본인 손으로 꼭 잡겠노라 다짐했던 대상이 갑작스럽게 죽었다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서 내에서도 그를 죽었다라고 어느정도 단정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쿠라이 홀로 그의 흔적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근데 살아있다면, 왜 사라졌을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사쿠라이는 속으로 조용히 우즈이의 말에 동감하며 물을 삼켰다.

 

 

 

12월은 정말, 살에 서리가 낄 듯 추워서 아무리 따뜻하게 입어도 저도 모르게 달달 떨게되는 점이 있었다. 가령 오늘같은 날은 더더욱. 사쿠라이는 패딩을 잘 여미고 비니를 더 깊게 눌러썼다. 어우 추워. 한겨울에 잠복수사를 하고 전력질주를 해서 잡은 범인은 그래봤자 경범죄였지만 경찰차로 빠르게 호송되었다.

 

뿌듯하긴 한데 따뜻한 휴식과 맞바꾼 보상이 눈물나게 빈약했다. 겨울이나 여름에는 범죄를 좀 안 저질렀으면 좋겠다. 그럼 이렇게 고생해서 잡을 필요도 없는데.

 

이대로 집에 가기엔 너무 춥다고 생각하며, 사쿠라이가 입김을 후 내뱉고 근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커피 마시면서 몸 좀 녹이고 가야지.

 

 

 

“어서오세요. 카페 프리스타일입니다.”

 

“네, 핫초코 하나만 주세....”

 

 

 

에.....요?

 

하루살이의 인생처럼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사쿠라이는 어안이 벙벙해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보는 것은 아닌지 눈을 여러번 부볐다. 그대로였다. 그 다음은 이게 꿈은 아닌지 볼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놀랍도록 현실감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실이었다.

 

사쿠라이가 본인 스스로도 의심이 되는지 떠듬떠듬 말을 덧붙였다.

 

 

 

“....사미?”

 

“.............네?”

 

 

 

주문을 받던 알바생도 당혹감에 웃음을 띈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태도에 사쿠라이는 도리어 확신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틀림없이.

 

4개월간 세상에서 종적을 감춰버린 도둑 ‘사미’였다.

 

 

 

 

 

 

 

 

 

 

 

“그... 이것 좀 놓지?”

 

 

 

사미가 지친 얼굴로 말했다. 안 도망가니까 좀 놔라. 자신의 팔을 꼭 붙들고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쿠라이는 말을 들을 생각도 없는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한 손으로 커피를 만드는 묘기를 선보이며 한쪽 팔에 장신의 남자를 달고다니는 기행은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으로 하여금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2시간을 보내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손님까지 생기자 보다못한 그가 문을 아예 잠그고 구석에 자리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건데?”

 

“.....”

 

“한 손으로 바리스타를 하는 사람이 있다며 동네방네 소문나겠어, 아주.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말을 해.”

 

“왜....”

 

 

 

왜 도망갔어? 2시간만에 처음 듣는 목소리에 숨통이 트인게 아니라 분통이 터졌다. 왜냐고? 그걸 지금 나한테 정녕 묻는건가?

 

말하라면 쉬는시간 내내 교무실에 끌려가서 이게 10분인지 10시간인지 모를 설교를 듣는 학생의 기분을 맛볼만큼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극강의 인내심을 발휘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도망갔냐라. 잊고 있나본데, 너랑 나는 경찰과 도둑의 입장이야. 나는 내 지위에 맞는 역할행동에 충실했다고 생각하거든?”

 

“이제까지 예고장도 끊고 사라진 적은 없었잖아.”

 

“그럼 내가 저 도둑 은퇴합니다, 하고 사라지게? 그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다. 세계 최초 은퇴 소식을 알리는 도둑이라니. 런던타임즈에 실릴만한 이야기네.”

 

 

 

사쿠라이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걸 알아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도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섭섭했다고 해야하나. 그동안 봐왔던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없어지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체포해야 할 대상에게 느낄만한 기분이 아니란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감정 취급하긴 싫었다. 도둑 사미는, 어느샌가 그에게 있어서 애증의 대상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네가 말도 없이 사라져서... 이대로 다시는 못보는건 아닐까 생각했어.”

 

“너에겐 좋은 소식이네.”

 

 

 

도둑이 도둑질하러 가겠다고 예고장 보내는 것만큼 안좋은 소식이 어디있냐.

 

사미가 사쿠라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지만 기분은 더 나빠졌다. 그렇게 말하면, 꼭. 정말 다시는 안나타나려고 했던 사람같잖아.

 

 

 

“왜 사라졌었어?”

 

“....일단은 자리부터 옮기면 설명해줄게.”

 

 

 

 

 

 

 

 

 

 

 

 

 

 

 

 

“어디야, 여긴?”

 

“내가 사는 옥탑방.”

 

 

 

...여기가? 사쿠라이가 짜게 식은 눈으로 다 쓰러져가는 집을 흘겨봤다. 녹색 페인트칠 된 옥상에 우뚝 서있는 초라한 집은, 수많은 값비싼 물건들을 훔치고 다닌 사람의 집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몇억대의 유물도 훔쳐간 사람이 왜 이런 집에서 살고 있는거야?

 

 

 

“들어와. 밖에 춥잖아.”

 

 

 

삐걱이는 철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밖과 달리 안에는 제법 사람사는 집같은 분위기가 났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방 한켠에는 각종 낚시도구와 화구, 그리고 캔버스가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저건 취미로 하는건가.

 

방을 슥 둘러보던 사쿠라이의 시선이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더미에 꽂혔다.

 

이제껏 사미가 훔쳤던 보석과 유물들이 찍힌 사진과 그에 따른 주의사항이나 보안 시설에 관한 상세정보가 그 안에 전부 담겨있었다.

 

아니, 그보다..... 의뢰인?

 

 

 

“뭐야 이 자료들은...?”

 

“본 그대로야.”

 

“뭐?”

 

“이제까지 훔친 물건들 전부 의뢰가 들어온 것들이었지.”

 

 

 

사쿠라이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의뢰라니?

 

 

 

“그럼 그 물건들은....네가 가져간게 아니었다고?”

 

“내가 보석이나 유물을 어디다 쓰려고 훔치겠어? 장물이라 팔데도 없는데. 의뢰비로 밥 벌어먹고 사는게 제일 편하지.”

 

“하지만...사미 너는...”

 

“아, 그리고. 호칭 좀 정정해줄래? 밖에서 그 이름으로 부르면 곤란해서.”

 

 

 

오노 사토시가 내 이름이니까 편할대로 불러도 좋아. 오노가 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좁은 공간 안에 훅 퍼져나갔다. 사쿠라이는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 입만 축였다.

 

괴도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던 그가 사실은 의뢰비를 받고 물건을 훔칠 뿐인 사람이었다니. 이래서야 브로커들이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내가 요새 도둑질을 안하는건, 최근 위험한 의뢰인들이 생겨서야. 내가 주로 훔치는 것들은 장물이나 암거래를 통해 매매된 물건들.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의뢰인에게 줬거든.”

 

“그럼 그 위험한 의뢰인이라는건...”

 

“아무 문제 없는 값비싼 물품들이지 뭐. 주로 명화 쪽이 의뢰가 잘들어오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걸 훔쳐? 그래서 이제 도둑질은 그만두고 카페나 제대로 운영할까 싶었지.”

 

 

 

유순한 눈꼬리가 예쁘게 휘어졌다. 거짓이라곤 한톨도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솔직히 같은 서의 우즈이나 미야무라가 들었더라면 범죄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자 거짓말이 태반이다 하고 제 귀를 틀어막았을 것이다.

 

보통 범죄자를 심문할 때의 사쿠라이 역시 그랬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거짓말로 덮어 감추기 바쁘고 어떻게든 심문하는 이들을 속이기 위해 항상 머리를 굴리곤 했다. 이는 증거와 수사로 간파할 수 있었고 그 전까지는 그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노와 단둘이 대면하고 있는 지금 그의 말이 이상하리만치 아귀가 탁탁 들어맞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억원대 물건을 훔치고도 낡은 옥탑방에 살고있다는 점이나 그가 훔친 물건이 국립 박물관으로 제대로 돌아갔던 일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이제 그만 돌아가. 원하는 얘기는 다 해줬잖아.”

 

“도둑을 눈앞에 두고 내가 어딜가.”

 

 

 

문 밖으로 오노가 밀어내려고 하자 사쿠라이가 또 손목을 으스러지게 꽉 붙들었다. 오노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핏발이 선 눈으로 그렇게 보면 내가 어떻게 도망가라고?

 

 

 

“야, 솔직히 넌 양심이 없어. 천사소녀 네티도 안봤지? 셜록스도 네티를 현실에서 보고도 모른척 해준단말야.”

 

“만화랑 이거랑 같아? 넌 내가 반드시 체포해서 끌고갈거야. 보고도 모른척하라니 어림도 없지.”

 

“나 봐서라도 넘어가주면 안돼?”

 

“네 어디가 좋아서 내가 넘어가?”

 

“나 귀엽잖아.”

 

“그래도 안돼.”

 

“귀엽다는건 부정 안하네.”

 

 

 

그러고는 치사하다며 볼을 크게 부풀린다. 조금 전까지 세상 모든 양아치 기를 씹어먹을 듯한 모습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사람 어디갔죠? ...그래도 저 토실한 볼이 좀 귀여운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사쿠라이가 여기서 오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경찰서에 끌고간대도,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노가 도둑 사미라는걸 증명할 수 있는 물적 증거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재판에서는 심증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수사과에서는 오노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예정이었다.

 

....근데 설마하니 커피사러 카페를 들렀다가 마주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마주친 이상 오노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번이 만나는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절대 못놔.”

 

“하아...”

 

 

 

오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동설한이란 말이 어울리는 추위 속으로 쫓아내기엔 양심이 찔렸는데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구는걸보면 밖에다 집어던지고 싶어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쿠라이의 행동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안돌아간다는거야? 아니 처음부터 이상했어. 도둑을 눈앞에 목도한 경찰이 신고도 안하고 집까지 따라오다니 미친게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수도 있는거잖아.”

 

“일반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으론 절대 이해 못해.”

 

“그냥... 시답잖은 이유야.”

 

 

 

사쿠라이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가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형사가 된 직후엔, 흔하고 진부한 일들에 세상만사가 지루했다. 자신이 동경하던 흥미진진하고 소름이 끼칠정도로 위험한 사건들은 현실에서 쉽사리 일어나지도 않았다. 일어난다고 해도 강력반 위주로 돌아가는 사건들 뿐이었던지라 그냥 경찰 일을 그만둘까도 싶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21세기에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야말로 ’대 괴도 루팡‘의 재림입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순식간에 사쿠라이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네모난 화면 속에, 한 남자가 흔들림 없이 옥상 위에 곧게 서있었다. 헬기 조명과 달빛이 뒤섞여 그의 위로 부서져내렸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는 살며시 웃고 있었다. 사쿠라이는 진흙탕 속에서 뒹굴던 다이아몬드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빠르게 편성된 괴도 ‘사미’ 전담팀에 속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 일이 자신의 천직임을 느꼈다. 사미를 잡기위해 잠복하고 경비체계를 단속하고 계획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취객들을 이끌고 다니던 시절보다는 훨씬 즐겁고 좋았다.

 

그 속에서 유난히, 갑갑한 새장을 벗어나 하늘을 가르며 자유로운 새처럼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오르던 괴도의 모습은 사쿠라이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처럼 빛났다.

 

 

 

“볼품없게 널 체포하는건 괴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런건 싫어.”

 

 

 

적어도 가장 뛰어났던 괴도의 모습으로 체포하는 쪽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괴도를 그만둘거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껏 오노를 체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의 동료들이 해온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고만다.

 

때문에 사쿠라이는 지금 어쩌면 좋을지 몰라 혼자서 내적갈등 중이었다.

 

 

 

“...정말 그만둘거야? 도둑질하는거.”

 

“경찰이 도둑질 더 하라고 권유하는 날이 올줄이야. 살다보니 별 일이 다있네.”

 

“그만두지마.”

 

“야아, 도둑질이 뭐 좋은거라고 그만두지 말래. 그만두라고 하면 했지.”

 

 

 

오노가 사쿠라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복슬복슬한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감기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네가 괴도로 있는 모습이 제일 멋있었어.”

 

“말이 좋아 괴도지 사실 도둑인데.”

 

“그래도 훔쳐서 원래 주인한테 돌려줬다며.”

 

“그거야 의뢰니까. 이젠 질렸지만.”

 

“그럼 나 집 안가.”

 

“아씨... 빈말로라도 한다고 할걸.”

 

 

 

묘한 적막이 맴돌았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마냥 얼굴을 붉히고 있는걸로 봐서는, 자신이 괴도일 때가 제일 멋있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 것 같긴 한데. 뭐 경찰이 저래도 되나?

 

오노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힘이 빠진 사쿠라이의 손에서 팔을 빼내어 뺨을 양 손으로 감쌌다.

 

따끈한 온기가 퍼지고 사쿠라이의 크고 동그란 눈이 꿈뻑거렸다. 그래, 이 눈이 예쁘고 좋아서 괴도를 그만두지 못한 적이 있었지. 돈벌이라고는 해도 도둑질에 질려서 그만둘까 싶었을 때 순수함이 담긴 눈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쫓던 모습이 귀여워서 자주 예고장을 보낸적도 있었는데.

 

 

 

“그럼 다음 주에, 마지막 예고장을 하나 보낼게.”

 

“마지막 예고장이라고?”

 

“그래.”

 

 

 

흔들리는 동공이 자신을 응시해온다. 오노가 곱게 웃으며 작게 소근거렸다. 네가 직접, 그 손으로 날 잡는거야.

 

 

 

“다른 사람보다는 네가 잡아줬으면 좋겠어.”

 

 

 

약속 해줄거지?

 

 

 

“....뭘, 훔치러 올건데?”

 

“그건 비밀이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입술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봄꽃이 피어나는 때처럼, 설레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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