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春萬歲
청게 x 툐툐로
#이른_봄
“사토시!! 이 경기 내가 골 넣어서 이기면!! 나랑 사귀는거다!!”
“저…미친놈이.”
11월쯔음 시작한 전국 고교 축구 대항전에서 쇼와 사토시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보란 듯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원래부터 축구가 유명한 고등학교였지만 쇼가 주장을 달고 나선 날개를 달기라도 한 마냥 축구부는 더욱 성장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이제 올라가는 놈한테 무슨 주장이냐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전주장이 부원들을 너무 심하게 패는 바람에 짤렸고, 어쩌면 선택권이 없었다. 잘생기고, 잘 놀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쇼를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 그 잘나가는 소문 속 주장이 누구냐면,
“나랑 사귀는거다!!!”
“시끄러!!”
결승전인 지금, 전교생과 관람객을 가득 채운 사람들 앞에서 공개고백을 하다 코치한테 한대 맞은 저, 미친 사쿠라이 쇼이다.
“저게 진짜 미쳤나. 너 괜찮아?”
카즈나리는 자기가 다 화끈거리는 것 같아 옆에 앉아있던 사토시를 바라보았고 사토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 몰라 라고 대답했다. 나같으면 쪽팔려서 죽고싶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카즈나리는 이내 사토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끼리끼리 놀고자빠졌네, 하며 혀를 찬 카즈나리는 더이상 부끄러움만으로 귀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사토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카즈나리는 솔로천국을 속으로 외쳤다.
[사쿠사토] 靑春萬歲
#봄
“짜증나아.”
“자업자득이다. 미친놈.”
쇼는 벤치에 드러누웠다. 분명 자신은 최고의 플레이를 했었다. 자신이 두골이나 넣은 그 결승전은 당연히 쇼가 속한 축구팀의 승리였다. 심지어 2-0. 즉, 자신이 우승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계획도 확실했고, 심지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다만 우승과 동시에 달려든 동료들과 코치,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우승메달을 사토시의 목에 걸어주지는 못했다. 그것 빼고는 완벽에 가까웠는데, 왜 그 후 사토시는 단 한번도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 B반 나나미가 편지 주더라. 사물함에 넣어놨어. 한번만 더 이딴 셔틀 시키면 진짜 죽여버린다.”
“너 가져라. 다 필요없어. 아아아아 사토시이이이.”
“이거 진짜 중증이네.”
그 경기 이후 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본교를 넘어 다른 학교에서까지 쇼를 보러 올 정도였다. 공개고백을 했는 것은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고 멋있는 축구부 주장으로 이름을 날린 듯 했다. 그딴건 다 필요 없었다. 쇼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사토시였다. 얼굴도 비치지 않는 그 매정한 오노 사토시.
#첫_봄
쇼가 사토시를 처음으로 본 것은 작년 입학식 날이었다. 축구에는 이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쇼는 중학교 3학년, 지금 학교로 스카웃 당했다. 축구가 유명한 학교라 이미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스카웃까지 해준다고 하니 기세등등하게 이 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입학한 학교는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자기도 상류층 자식인 주제에 이런 상류층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가쿠란을 원했지만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어야하고 심지어 구두를 신어야한다는 것이 영 불편하기만 했다. 크게 하품을 하며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 쇼는 갑자기 입학식장이 살짝 시끄러워짐을 느꼈다. 뭐야, 재미있는거라도 하나 싶어 쇼는 단상을 바라보았다.
“전국 고교 미술대회 최우수상, 2학년 A반 오노 사토시.”
교감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꺅, 하는 소리가 조금 들렸고 이내 단상에는 호명당한 남자가 올라왔다. 뭐야, 남자야? 쇼가 중얼거리며 다시 시선을 거두려 했으나 순간 눈에 들어온 그 남자에 그대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고 갈색 빛이 도는 살짝 긴 머리를 넘기며, 가벼운 발걸음과 비교하였을 때 조금 피곤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에, 사토시에게 그대로 쇼는 시선을 빼앗겼다.
쇼 옆에 열려있는 창문으로 살랑 바람이 불었다. 따스한 봄바람에 밖에서 흩날리던 벚꽃잎이 춤을 추듯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쇼의 눈 앞에서 살랑거리는 벚꽃잎들 사이로 사토시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피부와 그윽해보이는 눈, 높은 코와 올망졸망해보이는 입, 긴 목과 큰 손, 그리고 아담한 키. 고개를 한번 숙이며 상을 받아든 사토시는 전교생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그때 둘은 눈이 마주쳤다. 쇼의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을 그렇게나 뚫어져라 보고 있는 쇼의 시선을 사토시가 모를리 없었다. 눈을 잠시 마주친 쇼는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떨어지는 벚꽃잎이 천천히 흘러갔다. 벚꽃잎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잔뜩 귀를 붉힌 쇼는 딸꾹질을 했다. 사토시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그게 쇼의 지독한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사토시는 1년 선배로 축구부만큼 유명한 미술부 부부장이었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내였다. 이 학교에 올 만큼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지만 오직 미술실력으로 스카웃 당했다 들었다. 쇼가 입학식을 끝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물론 축구부 등록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사토시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쳤다고, 말을 한번이라도 섞고 싶다고 생각했다. 숨이 차올라 죽을 것 같다고 느낄 때 까지 쇼는 학교를 뛰어다녔다.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는 사토시를 찾아다니던 쇼는 결국 미술부 부실 문을 벌컥 열었다. 거기도 이제 막 부 소개가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는지 부실에는 사토시 외에 다른 부원은 없었다. 곧 갈게,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은 사토시는 문을 열고 들어온 쇼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우리는 설명회 다 끝났는데. 내일 다시 올래?”
“………아, 그,”
“아 축구부실은 여기가 아니라 앞건물 1층이야. 운동장 바로 앞에.”
사토시는 아무렇지 않게 쇼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어 이젤을 정리하였다. 사토시의 손엔 물감이 굳어있었다. 아직 덜 마른 그림을 옮긴 모양이었다. 그렇게 묻어 어지럽혀져있는 그 물감 마저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것마저 좋았다. 쇼는 너무 뛰어 숨이 차 말이 안나오는건지, 아니면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었다. 귀 뿐 아니라 얼굴과 목까지 잔뜩 빨개진 쇼는 사토시에게 성큼 다가갔다.
“저, 저를, 아, 아세요?”
“어?”
“제가 추, 축구부 찾을거, 라고 어떻게,”
“아, 축구 좋아해서 작년에 경기 보러간 적 있어. 그리고 너 우리 학교 온다고 여자애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었고. 사쿠라이 쇼. 맞지?”
쇼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축구를 하길 잘했다 싶었다. 진짜 너무 잘했다고. 하느님 감사하다고. 쇼는 멋없이 떨리는 손을 자신도 모르게 내밀어 사토시의 물감이 묻은 손을 잡았다. 그런 쇼에 사토시가 조금 놀랐지만 표정 변화 없이 쇼를 바라보았다. 뭐하는 짓? 이라는 나근한 목소리에 쇼는 말을 정리할 것도 없이 큰 소리를 뱉어냈다.
“저도 좋아해요!”
“…어. 너 축구 좋아하는거 알고 있어.”
“아니! 선배요! 선배 좋아해요!!”
부실에서 흘러가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불어오는 달콤한 봄바람도, 흩날리는 벚꽃잎도, 두근두근거리기 바쁜 심장도 그대로 다 멈춘 것 같았다. 쇼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단 하나,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토시였다. 사토시는 잠시 멈칫했다가 그 손을 피했다. 그제서야 다시 봄바람이 느껴졌다. 멈추었던 벚꽃잎이 사토시의 머리에 살랑거리며 앉았다. 벚꽃과 같은 향을 내며 사토시는 큼, 하고 기침을 했다가 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 귓볼을 만지며 아까와 같은 나른한 표정으로 쇼를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피어싱.”
“……네?”
“우리 학교 피어싱 금지야.”
사토시는 그 말을 끝으로 정리하던 이젤을 내려놓고 부실 밖으로 나갔다. 사토시가 사라진 부실에는 벚꽃잎과 함께 사토시의 향이 남아 쇼를 간지럽혔다. 아, 이건 진짜 나쁜데. 쇼는 그렇게 생각하며 쪼그려앉았다. 붉게 타오르는 목을 쇼가 큰 손으로 쓸어내렸다.
진짜, 큰일이 난 것 같았다.
#다시_지금의_봄
쇼는 축구공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바로 고백해서 바로 까인지 1년. 쇼의 짝사랑은 아직까지 진행중이었다. 사토시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고 싶었다. 사토시가 좋아하는 빵이라도 알게되는 날에는 누구보다 빨리 매점으로 달려가 그 빵을 사 사토시에게 가져다 주었다. 첫날 사토시가 말한 것 처럼 피어싱은 이제 더이상 쇼의 귀에서 달랑거리며 빛나지 않았다. 혹시 피어싱 자국도 싫어할까 싶어 살구색 테이프까지 붙이고 다니는 쇼에 같은 축구부 친구인 마사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굴었다. 이게 사랑이라는거다 애송아! 하며 쇼는 낄낄거렸지만 마시키의 눈엔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게 사랑이면 항상 사가지고 가는 그 빵을 다시 네가 먹으면서 돌아오진 않겠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너무 불쌍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사키는 물을 들이키고 쇼를 바라보았다. 사토시가 주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주장을 꼭 해야겠다 소리지르고 다녔던 쇼였기에 그게 대단하기도 하면서 미련해보이곧 했다. 자기 좋다는 여자들이 줄을 섰는데 공개고백도 모자라 까이기까지 하다니. 저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청춘은 대단하구먼, 이라고 생각했다. 아, 자기도 청춘이지만. 다시 훈련을 시작하자는 코치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쇼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나 코치에게로 달려갔다. 저렇게 미련하게 구는 것만 빼고는 참 괜찮은 새낀데, 마사키는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훈련은 조금 길어져 부활동 시간이 조금 넘어서 까지 계속되었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였지만 부원 누구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따위 하지 않고 열심히 공을 찼다. 공이 데구르르 굴러 쇼의 발 앞에 섰다. 쇼는 찬스다, 하며 힘차게 공을 찼다. 항상 이렇게 일들을 빨리 해결하던 쇼에게 있어서 1년 넘게 짝사랑이란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답답함과 사토시가 보고 싶은 마음에 쇼는 공을 세게 찼다. 뻥 하는 소리와 함게 쇼의 발을 떠난 공은 다른 부원에게 막혀 골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칫, 소리를 내며 다시 달리던 쇼는 이내 다른 부원에 의해 멀리 날아가는 공을 바랍았다. 그리고 그 공의 끝엔 그토록 찾던 사토시가 있었다. 반가움에 웃었던 쇼는 이내 표정을 굳히고 빠르게 사토시에게 달려갔다. 저대로라면 사토시가 공에 맞을 것 같았다. 카즈나리와 이야기를 한다고 사토시는 지금 이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세이프.”
“……아?”
다행히 공보다 쇼가 빨랐다. 한걸음에 달려 온 쇼는 날아오는 공을 팔로 쳐냈다.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사토시는 헉헉거리며 자신을 보고 서있는 쇼와 데굴거리며 굴러가는 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뒤에서 부원이 죄송합니다! 하고 소리를 쳤지만 그런건 둘에게 들리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날과 마찬가지로 봄바람이 불었다. 1년이 지났지만 서로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쇼는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사토시는 여전히 나른해 보였다. 카즈나리는 갑작스러운 쇼의 등장에 오,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선배 오랜만이네요. 앞을 잘 보고 다니셔야죠. 큰일나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앞을 보고 다녀도 저렇게 날아오는 공은 못피해. 조심해. 다른 사람 다칠라.”
“제가 찬거 아니에요. 진짜.”
“…그래. 안녕.”
사토시는 쇼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급하게 자리를 뜨려 했다. 카즈나리가 왜~ 하고 사토시가 끌어당기는 것을 버텼고 사토시는 그런 카즈나리에 눈으로 욕하며 빨리 가자 말했다. 그런 사토시를 그냥 보낼리 없는 쇼는 사토시의 앞을 막아섰다.
“선배, 저 아직 그 대답 못들었는데.”
“무슨, 대답?”
“……알면서 그러시는거면 나빠요. 저 피하시는거죠.”
“……알면 좀 저리 가줄래. 바빠서.”
사토시는 한뼘은 더 큰 쇼의 눈을 억지로 피하며 카즈나리를 포기하고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쇼는 다시 한번 그런 사토시를 막아세웠다.
“그때 실례한거라면 죄송한데, 그래도 저 진짜 선배 좋아해요. 알잖아요. 왜 안돼요?”
거침없이 직진하는 쇼에 사토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겨우 인정하고 쇼를 바라보았다. 쇼의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땀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살랑하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봄바람과 흩날리는 벚꽃잎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네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라 사토시는 생각했다. 그저 지금만 그런 것이라고. 쇼를 빤히 바라보던 사토시는 급하게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야, 양이치 같아서 싫어.”
“……에? 양아치요?”
“어. 막, 머리도, 노랗고 여튼 싫어. 양아치 딱 질색이야. 니노 가자! 좀! 제발!”
사토시의 발언에 쇼는 그대로 굳었다. 양아치라니, 양아치라니. 한번도 양아치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자신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 사토시가 빠른 걸음으로 카즈나리를 끌고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쇼는 양아치, 라고 중얼거렸다. 저놈 좀 잡아오라는 코치의 말에 달려오던 마사키는 그 말에 그대로 빵터져 웃느라 바빴다. 이번엔 좀 충격이겠네, 거리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웃지 못하는 것은 쇼와 사토시 둘 뿐이었다.
“야. 쟤가 양아치면 난 퇴학각이다.”
“무슨 개소리야. 너는 진짜 한번만 더 그래봐. 진짜 붓 콧구멍에 박을거야.”
“네 빵셔틀 2학년 전교1등이잖아. 축구부만 아니면 전교부에서 데려갔을거라고 아쉬워 죽겠다고 울던 마츠준 생각 안나냐? 여튼 대가리 돌아가는게 그렇게 느려서야. 예술한다는 놈이 좀 창의적이여야지.”
“너 진짜 한마디만 더하면 죽인다.”
아이고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하며 카즈나리가 킥킥거렸다. 그렇게 부끄러워 하면서 고작 생각해 낸게 양아치라니 기가 찼다. 쇼의 상태가 어떨지 대강 예상이 갔다. 그 건실한 청년이 양아치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클까. 그저 재미있는 상황에 카즈나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목을 붉게 물들인 사토시 꼴도 너무 웃겼다. 뭘 그렇게 솔직하지 못한지 모르겠었다. 바보같은 놈,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왜그러냐. 너도 좋은거 아니야?”
“……아니라고.”
“아닌게 아니구먼”
“나랑 안어울려.”
“지랄났다. 지랄났어.”
#아직_봄
마사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단하다 말했다. 학주와 담임까지 이기고 유지하던 노란 빛이 돌던 머리를 저렇게 한순간에 까만색으로 염색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양쪽 시력이 1.5인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는 뿔태안경까지. 마사키는 이새끼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하며 쇼를 바라보았다. 쇼는 그런 시선따위 신경쓰지 않는 듯 수학 숙제를 하고 있었다. 저러고 다닌지도 한달이었고, 봄도 끝나고 있었다.
“야. 선배가 양아치가 싫다고 했지 찐따가 좋다고 했냐?”
“아가리 닥쳐라.”
“너 진짜 찐따같아. 찐으로.”
“아가리.”
“찐따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아.”
“아닥.”
쇼는 더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마사키를 무시하고 마지막 답을 적어넣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풀어낸 수학문제를 한번 더 확인하고 책을 덮은 쇼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한달동안 끼고 다니기는 했는데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트레이드 마크라며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았던 노란 머리가 검게 물든 것을 볼때마다 적응이 안되는 것은 쇼도 마찬가지었다. 얼마나 보기 좋냐며 자신의 등을 팡팡 때리는 학주의 얼굴이 스쳐지나가 더 짜증이 났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양아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결국 자기의 외향 문제라고 생각한 쇼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스타일을 포기했다.
그렇게 포기하면 뭐해. 사토시는 또 보이지도 않는구먼.
쇼는 짜증이 나 샤프 끝을 씹었다. 차여도 괜찮다고, 그냥 말을 섞고 사토시가 나를 알아주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적인 이유를 들으니 충격에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우울할 시간도 없다고, 사토시가 내년에 졸업하면 이제 만날 일이 없다는 생각에 이렇게 일을 강행한 것인데 한달이 지나 이 봄이 끝날 것 같은 지금까지 사토시는 또 자취를 감추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또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사토시가 상장을 받는 것이 조례와 함께 방송으로 나왔을 때였다. 미워할려고 해도, 이제 안좋아하려고 해도 그 예쁜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뭐 하나 잘해주는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왜그렇게 좋은지, 자기가 이렇게 금사빠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 공하나 빠졌네. 나 이거 넣고 갈게. 먼저가!”
“오키.”
그날의 축구 연습은 길어졌다. 한달 뒤 있을 옆 고등학교와의 친선경기를 준비하고 있기에 다들 군말 없이 길어지는 연습에 임했다. 심지어 결승 때 만났던 학교라 더욱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굴러다니는 마지막 공을 주워든 쇼는 마사키에게 먼저가라 말한 후 창고로 향했다. 귀찮긴 했지만 공이 하나 비어서 코치한테 한대 맞는 것 보단 나았다. 이미 해가 져 학교엔 자신 밖에 없었다. 빨리 집에가서 씻고 자야지, 라고 생각한 쇼는 창고 문을 벌컥 열었고 통에 공을 집어넣었다. 자 이제 집에 가볼까, 라고 생각했던 쇼가 뒤로 도려는 순간 느껴지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매트 위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노, 노숙자? 라고 생각한 쇼는 조금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매트로 다가갔다. 거의 앞에 왔을 때 벌떡 일어나는 사람에 쇼는 누, 누구야! 라고 소리쳤고 이내 알고있는 향에 멈추어 섰다.
“……시끄러워.”
“……선배?”
매트 위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다른 이도 아닌 사토시였다. 은은한 달빛이 창고의 창문으로 스며들어와 둘을 밝혔다. 잠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사토시의 눈에는 피곤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놀란 쇼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무릎을 숙여 사토시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선배 여기서 뭐하세요…?”
“……뭐야. 너야? 보면 몰라. 깜빡 잠들었네.”
“…여기서요?”
“불만이라도?”
사토시의 말에 쇼는 고개를 저었다. 자고 깨서 그런가 안그래도 조금 예민한 사람이 더욱 예민하게 느껴졌다. 사토시는 기지개를 켜며 쇼를 바라보았다. 다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쇼에 정신이 든 사토시는 살짝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여기서 자면 감기걸려요. 먼지도 많고.”
“조, 용해서. 네가 신경쓸 일 아니야.”
“신경쓰이게 구니까 그렇죠.”
쇼는 비몽사몽하던 아까의 사토시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당황도 하는구나 싶어 쇼는 사토시에게 웃어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죠. 쇼의 웃는 얼굴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햇빛도 없고 봄바람도 없었다. 흩날리는 벚꽃도 없음에도 쇼는 반짝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안가요? 라고 말하는 쇼에 사토시는 어, 어 가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급하게 일어나서 그런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사토시를 솜씨 좋게 쇼가 잡았다.
살랑하고 봄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달빛이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따스했다. 쇼의 품에 안긴 사토시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바랬다. 사토시를 끌어안고 있는 쇼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린 둘은 후다닥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큼, 하는 기침 소리만 몇번 창고에 울렸다. 귀가 시뻘개진 쇼는 조, 조심하세요 라고 말하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편이 건강에 좋겠다고 생각한 쇼는 그대로 문고리를 당겼다. 분명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려야 할 문은 이상할 정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라, 소리를 내며 문을 몇번더 철컥거리던 쇼에게 사토시가 걸어왔다.
“왜, 왜 그래?”
“문이, 안열리는데요…?”
“…뭐?”
사토시와 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황스러움이 잔뜩 들어있는 쇼의 눈을 보자 사토시는 지금 장난치는게 아니란걸 바로 알아차렸다. 문고리를 잡고 몇번을 돌렸지만 문은 덜컹 소리를 낼 뿐 열리지 않았다. 서로를 아무말도 없이 바라보던 둘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청춘만화같은 전개인가 싶었다. 어쩌지, 하는 소리를 내는 사토시에 쇼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괜찮아요. 아이바한테 전화해서 문 열어달라고 하면 돼요. 창고 밤에 알아서 잠기거든요. 키 부실에 있으니까 열 수 있어요.”
“……그래?”
“네. 걱정마세요.”
쇼는 그렇게 말하며 사토시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럼, 다행이고 라고 말하며 사토시는 고개를 돌렸다. 계속 저렇게 웃는 것은 반칙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마사키는 바로 전화를 받았고 지금 막 전철을 타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이야기하는 마사키에 천천히 와, 라고 하고 싶었지만 사토시가 들을 것이 분명하여 차마 그렇게 말은 못하고 쇼는 전화를 끊었다. 언제 갔는지 매트 위에 앉아있는 사토시에게 다가간 쇼는 사토시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아이바 곧 온데요. 조금만 기다리죠 뭐.”
“…어. 그래 다행이다.”
쇼와 사토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굴렸다. 그런 쇼가 조금 의외이긴했다. 항상 직진만 하던 쇼였기에 이럴 때라면 불도저처럼 자신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며 달려들 것 같았는데 쇼는 막상 쭈뼛거리고 있었다. 사토시는 그런 쇼가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려보여 피식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쳤다.
“앉아있어. 정신 사나워.”
“아, 아. 네.”
선배 불편할까봐 그랬죠, 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못하고 쇼는 사토시의 옆에 앉았다. 사토시가 말한대로 창고 안은 조용했다. 사락하고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앞만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쇼를 사토시가 몰래 바라보았다. 달빛이 비추는 쇼의 머리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까맣게 물들인 머리와 귀에 붙어 있는 살구색 테이프가 보였다. 설마, 자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아치는 싫다고 한 뒤 저렇게 스타일이 바뀐 쇼에 사토시는 귀가 붉어짐을 느꼈다. 어울리지도 않는 뿔태 안경이 자신도 불편한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쇼가 웃기기도 했다. 사토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경, 안어울려.”
“…네, 네?”
“알도 없는 그 큰 안경, 어울리는 것 같아서 쓴거라면 전혀 안어울린다고. 바보같애.”
“아, 하하, 그,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알면 됐구….”
쇼는 그 말에 바로 안경을 벗어 바닥에 던지듯 내려두었다. 마사키가 찐따 같다고 수백번은 말했을 땐 그저 아가리를 좀 다물라 했던 주제에 사토시의 말 한마디에 쇼는 안경을 바로 버렸다. 쇼는 멋쩍게 웃다 사토시를 힐끔 보고 입을 열었다.
“그, 지금은……어때요?”
“뭐가?”
“아, 아직… 양아치 같아요?”
“그게 뭐야.”
사토시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자신을 보며 말하는 쇼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나 때문에 머리까지 염색한거야? 라고 묻고 싶었지만 사토시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그냥, 퍽 귀여웠다. 사토시는 항상 진심으로 다가오는 쇼가 싫지 않았다. 그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쇼를 마주쳤던 입학식날의 강당에서부터 그랬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흩날리는 벚꽃잎과 잘 어울린단 생각이 절로 든 그 쇼가 잊혀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쇼를 그렇게 쳐낸 것은 단 하나. 부끄러워서 였다고 말해도 너는 나를 여전히 좋아할까. 이렇게 소심한 나를. 사토시는 피식 웃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창고에서 자신도 모르게 꼭꼭 숨겨왔던 감정들이 퐁 하고 튀어나왔다. 사토시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쇼의 까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 잘어울려. 훨씬 낫다.”
“……에?”
“잘생겼으니까 다 잘어울리지 뭐.”
퐁 하고 피어오른 감정은 결국 달빛을 따라 반짝거렸다. 자신에게 예쁘게 웃는 사토시의 얼굴이 쇼의 눈에 가득찼다. 1년. 자그마치 1년을 짝사랑했다. 그 1년 동안 이렇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두근거렸던 적은 없었으니까. 쇼가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사토시는 그제서야 아, 하며 손을 내렸다. 상황에 취해 결국 내뱉어버린 진심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또 찾아온 정적에 사토시는 쇼의 눈치를 보았다. 쇼 입장에서는 웃길 것 같았다. 그렇게 쳐냈으면서 이제와서 잘생겼느니 뭐니 하는 자신이 어이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사토시의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쇼는 여전히 아까 그 웃음을 떠올리며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을 100바퀴는 뛴 것 같이 심장이 두근거려 터질 것 같았다.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아직까지 밖에는 떨어지지 못한 벚꽃들이 흩날리고 있었는데에도 한여름 마냥 더웠다.
쇼는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자신의 옆에 놓여져있는 사토시의 손이 보였다. 덩치에 맞지 않게 큰 손을 계속해서 바라보던 쇼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손, 잡아도 돼요?”
“…어?”
물론 말을 내뱉고 바로 후회했지만. 쇼는 순간 자신이 미쳤구나 싶어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려 했다. 놀라 올라간 시선의 끝엔 사토시가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토시의 눈이 맑았다. 동그란 눈 안에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키스하고 싶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멀리 도망가 사라질 것 같아 차마 입에도 담을 수 없었지만.
쇼의 말에 사토시는 자신의 손을 꿈틀거렸다.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결국 쇼를 받아들이는 꼴이 될 것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과 같은 사람은 저렇게 봄같은 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피했던 지난 1년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었다.
‘너 그러다 쟤 영영 잃는다. 쟤 인기 진짜 많은거 알지? 고백편지 때문에 신발장 문이 안닫힌다던데.’
쓸데없이 카즈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말했을 때는 상관없다 말했지만 왜 신경이 안쓰이겠는가. 왜, 조바심이 나지 않겠는가. 사토시는 천천히 달빛으로 밝아지는 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말해놓고선 자신이 더 긴장해보이는 쇼가 보였다. 살랑하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 춤추던 벚꽃잎 하나가 쇼의 머리에 앉았다. 흘러들어오는 벚꽃잎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그냥, 솔직해지라고. 사토시의 입꼬리가 예쁘게 올라갔다. 1년동안 바보같이 지냈고, 바보같이 자신에게 고백했어도 지치지 않은 쇼가, 싫지 않았다. 이 봄이 끝나는 것이 싫은 만큼, 쇼가 좋았다. 사토시의 머릿속에 순간 쇼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정답이었다.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제서야 터져나오는 진심이었다.
“막 그렇게 잡더니, 왜 물어봐?”
“……네?”
“입학식 날 처럼 잡으면 되잖아. 이렇게.”
사토시는 천천히 쇼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귀를 붉게 물들이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토시에 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뜨거운 사토시의 손이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느껴졌다. 쇼는 하하, 거리며 멋쩍게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사토시의 두근거림이손을 통해 느껴졌다. 쇼는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손을 움직여 사토시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그런 쇼에 사토시는 조금 움찍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이 불었다. 벚꽃향이 창고안에 퍼졌다. 창고 안은 봄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봄 사이에 있는 두 청춘은 두 귀를 붉히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소리가 창고에 울렸다.
봄이었다. 봄이자, 청춘이자,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