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ass self
영혼 체인지 x 플로스
꿈은 어디까지나 무한한 듯이 자신의 무의식에 쌓여 있고, 그 안에서 오노는 사쿠라이의 인영을 보았다. 인영이라고 하는 것은 사쿠라이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보던 염색 머리에 귀에는 피어씽이 있었고, 어쩌다 보게 된 건지 모를 배꼽에는 전에 축구하다 유니폼을 들어올려 목을 쓸던 때 보았던 피어씽이 반짝거리며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쿠라이였고, 자신은 분명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끔 드라마같은 것들의 주제가 되는 해프닝이었다. 오노는 그런 꿈을 줄곧 꿨다.
사쿠라이는 오노와 연결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있다면 가끔 앉아서 과제를 하는 카페 근처 식당에서 사쿠라이가 친구들과 밥을 먹는다는 것, 오노가 교양을 듣고 난 후 같은 교실에서 다음 시간에 강의를 듣는다는 것, 오노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사는 곳은 멀리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차피 볼 일도 없다는 것. 그러니까, 끼워 맞추지 않는 이상 없었다. 오노가 사쿠라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꿈을 꾼다고 하기에는 자신은 사쿠라이에게 어떤 관심도 없었다. 그저 개꿈일 뿐이라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요즘은 괜히 처음 들어가면 얼마나 머리가 뻗쳤는지 관찰해보고는 하던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냥, 일어난 직후에 보면 꿈에 너무 몰입해있던 탓인지 사쿠라이의 윤곽이 아닌 제 둥그런 볼이 거슬렸다. 매끄런 입술도, 나른한 눈매도. 바보같은 일이라고 할 것 같아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날로 심해지는 것 같았다. 괜히 사쿠라이처럼 눈썹을 올려보기도 하고, 가끔은 벨트를 차볼까 고민했다. 청바지를 자주 입는 것 같아 청바지를 입어보기도 하고, 축구를 하는 걸 구경하고 있기도 하고. 곧 바보 같은 일이라고 듣는 것보다도 심각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 오셨잖아 사쿠라이 애처가”
사쿠라이 애처가. 7글자를 듣고 난 후의 오노는 조용히 절망했다. 도대체 왜냐면서 남들에게 뭐라 말을 꺼내보자고 생각하면 제가 한 짓거리들이 꽤나 명확히 제가 그 7글자라는 것을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꿈을 꾼다고 할 걸. 지금 말하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얼마나 좋아하면 사쿠라이가 되는 꿈을 꾸냐면서. 사쿠라이랑 얘기해보고 싶은 거 아니냐고 자신을 놀리겠지. 그런 걸 계속 듣고 있자면 머리가 지끈거리니까 오노는 포기하고 그런 게 아니라고도 하지 않고 그저 제 노트북을 꺼냈다. 가방을 닫고 친구들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을 노려서 일어나 제 음료를 사오겠다고 웃었다. 너구리 같다며 해명하라는 말들을 모두 무시하고 지갑을 찾아 카운터로 향하다 앞에 누가 있는 지 모르고 부딪혔고, 바보 같은 일이라고 듣는 것보다 심각한 일을 냈다. 순간 놀라 굳어서 앞을 봤는데 보인 귀 피어씽이 요즘 제가 봐오던 남정네의 그것이었다. 은색의, 심플한 디자인의 피어씽이 꼭 귓볼에 그렇게 걸려있을 필요도, 조금 쳐진 어깨도 필요 없었는데. 양쪽 모두 들고 있는 게 지갑이었던 탓에 옷을 더럽히거나 다치는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상대편이 말을 꺼내기에 그냥 죄송하다고 끝내도 되는 말을 왜 저리 길게 말하나 생각하면서 죄송하다고 오노는 그저 지나치려고 했다. 여기서 뭐라도 더 하면 분명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자신과 사쿠라이를 보고 있는 저 친구놈들이 문과대 이과대 가릴 거 없이 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것이었다. 그저 재수없는 사람으로 보이면 제게 좋았다. 그렇게 지나가고, 그냥 나는 또 조금, 그래, 아주 조금 사쿠라이를 관찰하는 나날을 보내고. 완벽한 시나리오였는데, 상대쪽은 생각이 달랐다.
“부딪힌 것도 인연인데, 얘기라도 하실래요?”
“ ... 네?”
“가끔 축구 경기하는 거 보러 와주셨던 선배님이시죠? 가끔 흘끗거렸는데 눈이 전혀 안 맞아서 항상 구경해주시고 전에 음료수도 한 번 사주셨잖아요.”
“그건 어쩌다 원 플러스 원이길래.. 날도 더웠잖아요.”
“그럼 그거 갚는 겸요.”
머릿속에서는 이미 벽에 제 머리를 수백 번 박고 있던 탓인지 오노는 싱그러이 웃으며 알았다고 승낙을 했다. 친구들과 와서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하는 말에 방해한 건가요? 라며 물으면서 조금 당황해하는 모습은 항상 보던 표정과 달라 새로운 걸 알았다는 생각을 하며 어차피 놀러 온거라 괜찮다면서 음료수를 시키러 카운터를 향했다. 아, 완벽하게 망했다. 망했으면 뭐 어떡하겠냐. 맨날 보기만 하고 눈을 죽도록 피했던 상대가 매일 꿈에 나와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데 제일 비싼 음료수도 얻어 먹고 자신이 신경 쓰여 죽어가던 시간만큼 자신도 빼앗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노는 스스로 미친 짓을 했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1교시 있는 아침의 알람처럼 왜앵거리는 제 머릿속과 노트북과 가방을 챙기니 가방을 들어주는 사쿠라이와 유유히 다른 자리로 사라지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친듯이 속닥거리기 시작한 친구들을 두고 준수한 얼굴과 귀에 딱 맞는 목소리톤에 관심을 돌리려 노력했다. 감사하다면서 얘기를 꺼낸 사쿠라이가 진동벨을 예쁘게 뻗은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미끌거리는 걸 좋아하는 건가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 고개를 내려서 눈이 마주치자 느리게 눈을 끔벅였다.
“미안해요. 조금 멍해졌네.”
“아녜요, 저도 별말 안 했는 걸요. 멍한 선배님 얼굴만 구경했어요.”
원래 이런 애들은 다들 이렇게 말하나? 갑자기 들어오는 말에 웃으면서 그런 건 어디서 배우는 말이냐고 묻자
“그냥, 선배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이런 말만 생각나요. .. 이건 너무 주제넘었나요?”
이것도 배운 건가, 완전 선수잖아. 축구 아닌 쪽으로도 유능하구나. 그런 생각에 피식 웃자 사쿠라이는 뭐라 물으려다 울리는 진동벨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다. 받아가는 곳에 서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야무지게 가져오는 것이 꽤 귀엽다고 생각이 들자, 인기 많은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말하던 친구가 보내준 드라마 장면 클립이 생각나고, 귀여움은 최강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데에 사쿠라이가 한 걸음을 딛는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테이블까지 오는 데 걸리는 15걸음 정도의 시간동안 자기 부정을 했다. 가져온 쟁반에는 오노가 곧잘 먹는 케이크도 하나 올려져 있었고, 사쿠라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오노의 앞에 그릇을 내려뒀다.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걸 아는 건가? 사쿠라이를 바라봐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입에는 잘 맞냐고 묻는 미남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떨리는 눈빛은 뭘까.
그런 사쿠라이의 행동 뒤에는 사쿠라이 나름의 고민과 걱정과 최근 생긴 거울 기피증이 있었다. 염색모에 귀에는 피어씽을 하고, 배에도 뭔가가 반짝거려야하는 자신이 꿈에선 가끔 캠퍼스에서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선배의 모습을 했다. 꿈에서 영혼이 바뀌기라도 하는 걸까. 괜히 선배처럼 서보고, 제 입꼬리를 만져보고, 나른한 눈매로 제 앞에 항상 놓여 있는 전실거울을 바라보고, 웃어보았다. 웃는 표정이 자신과 다른 건 선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가. 나중에 지나가다 발견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자, 이름은 모르겠고, 성은 오노라고 했다. 아, 그 오노 선배님? 하고 묻자 그렇다고, 예술대회 상이나 공모전 상을 쓸고 다닌다던 그 선배라는 대답을 들었다. 독학했다고 하는데 왜 그리 잘 그리는지 다들 물어보고, 항상 장난을 치면서 장난을 치면서 자랑을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과제를 끝내러 사라진다는 미스터리한 사람, 그 과제들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꽤 인기가 있는 사람이라 같이 다니는 친구들 이외에도 오노를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한다고.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었다. 친구들과 다니면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하는 구나. 자신이 봤던 모습은 수업이 끝나고 조금 졸린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가방을 매는 표정 뿐이었는데.
하룻밤의 꿈일 뿐인줄만 알았는데, 누가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매일밤 똑같은 꿈을 꿨다. 입는 옷을 그리 잘 보지 않았던 탓인지 항상 제 옷을 입고 나오는 오노, 인지 자신인지 모르겠는 꿈. 항상 이상한 것은 사쿠라이의 옷을 입고 나온다는 점이었다. 오노가 어느 날부터 더 제 주변에서 잘 보이자 기억해뒀던 옷들이 있음에도 제 츄리닝을 입었다. 츄리닝을 입어도 이런 것은 절대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것을 입고 있고, 꿈이라면 기장이 딱 맞게 입혀질 만도 한데 항상 조금 헐렁한 상태였다. 이런 옷을 입은 건 본 적도 없으면서 현실감 넘치는 꿈에 전신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옷을 접는 꿈이 많았다. 하루는 제 잠옷을 입었던 적도 있는데... 생각할 수록 이상한 기분이라 그 기억은 어디로든 넣어두고 싶었다. 왜 이러지. 바보 같은 일이다.
그 잠옷 꿈을 꾼 날 이후로 오노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제 꿈을 꿀 수록 더 가까운 곳에서 선배를 볼 수 있는 걸까? 선배님도 나랑 똑같은 꿈을 꾼다면 더 가까워질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미 다른 친구들도 아는 일이었다. 오노 선배를 본 그날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조금 억지같으려나. 그 날부터 선배의 꿈을 꿨다고 말하면 다들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닌지, 밀려오는 고백들을 죽도록 거절만 해댄 탓에 저주라도 받은 건지 놀라워했다. 그 중에는 오노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거나, 전에 자신의 축구 경기에 와있던 것을 봤다는 도움되는 말들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겠지. 항상 연습하는 모습을 운동장 근처의 조경과 사람들이 꾸며둔 정원 옆 벤치에서 보고 있다는 모습에 항상 어떻게든 만나려 해봤지만 경기가 끝나면 거의 떠나 있었다. 음료수를 받았던 날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받았고. 소문으로는 오노가 사쿠라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비슷하게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제가 축구하는 모습을 본다거나, 미대에서도 과제를 할 때 한 번도 스포츠에는 관심 없던 사람이 공 같은 걸 그렸다나, 머리색을 물들인 캐릭터를 디자인했다나. 그런 말들을 사쿠라이의 친구들이 물어다주었다. 사실 알고 싶은 건 제가 아니라 뭘 좋아하는 지 정도 였는데. 그걸 알게 된 날이 오늘, 오노를 마주하고 앉은 날이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것을 조금 일찍 나온 탓에 버스 정류장에서 얼굴을 보고 알게 되었고, 버스 하나를 보내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만난 오노의 친구 덕에. 네가 오노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같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만나보는 건 어떠냐고 항상 떠들며 과제하러 온다는 카페를 소개시켜 줬고, 좋아하는 메뉴도 알려주고. 선배에게 뭐라도 답례를 하고 싶다고 하자, 소문내고 연애 안 한다는 놈이 연애하는 걸 놀릴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이미 답례는 충분하다고 웃으며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서 카페에 들렀고, 오노와 반쯤 일부러 부딪히고, 케이크를 주문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목에 양쪽에 거울처럼 모습을 반사하는 조형물을 통과해가다 둘은 눈이 맞았다. 거울이 보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자 있는 것은 서로였다. 그리고, 정말 거울을 보는 것처럼 꿈도 아니고 뭐냐는 말을 하고, 서로 당황하고, 놀라고, 변명하려다 말을 꺼내는 타이밍이 겹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그 사과도 겹쳐서 그저 조용해졌다가, 또 말을 꺼내려다 사쿠라이가 사실 선배를 좋아한다는 급작스런 고백을 꺼내고.
오노는 이 상황에 정말? 이라고 대답하면 큰일날 것을 알았다. 귀여워 보이기는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에 그렇구나 하고 대답해도 괜찮은 걸까?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사귀는 것도 무엇도 그닥 좋지 않을 것이다. 헤어졌는데도 계속 이 꿈을 꾸면? 오노에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오노가 되는 꿈을 꾼다고 말한 순간에는 그런 것들은 다 잊고 정말?이라며 화색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서로를 빤히 보면서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괜히 마주친 눈을 의식하게 되자 거울 같아 고개를 돌리면 또 제 뒤의 거울에, 다시 눈을 마주치고는 서로 웃었다. 항상 오노 선배가 되면 눈이 나른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요. 그건, 그냥 사쿠라이군인데. 그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런.. 느낌. 응, 그것도 사쿠라이 군이야. 그렇게 더 이야기를 하다 카페에서 나왔는지 뒤에서 휘파람을 불면서 놀리는 인간들이 오고 있는 즈음에 사쿠라이는 오노에게 말을 꺼냈다. 아직 가깝지도 못하고 더 알아가고 있는 단계니까, 걱정은 마시라고. 거절해도 나중에도 다시 아마도 할테니까, 그 전까지는 같이 항상 몸이 바뀌는 것 같은 꿈 얘기만 해도 즐거울 거라고. 아, 나중엔 같이 꿈에서 같은 동작이라도 해볼까요? 라면서 웃는 얼굴은 조금 서운한 강아지 같았다. 말을 할 동안 빠르게 다가온 짜증나는 인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강아지같은 표정이 귀여웠던 탓인지 고민을 쌓아뒀던 머리는 꽤 일을 치르고 보는 이상한 행동가가 되어 있어서, 언젠가 꿈에서 했던 것처럼, 사쿠라이의 얼굴에 다가가 입술을 맞췄다. 거울보다는 따뜻한 입술과 항상 제가 눈을 감아 보이지 않았던 얼굴과는 달리 놀라서 동그랗게뜬 눈, 곧 제 뒷목과 허리를 껴안는 손이 있어 꿈이라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영혼이 바뀌는 드라마같은 연애의 시작이었다고, 오노는 회상을 했고, 제가 그리던 그림에 시선을 옮겼다.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과 밟고 있는 물에 비친 원래 모습. 캔버스 뒷면에 사쿠라이가 연필로 작게 그려둔 오노의 모습. 나중에 언젠가 그릴 그림 뒷면에도, 꿈 속 거울이 아니라 제 눈 앞에도 사쿠라이가 있기를 바라면서 제 시그니처를 남기고, 의자에 늘어졌다. 전처럼 사쿠라이가 되는 꿈을 꾸게 해달라고 가볍게 원해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