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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day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x 룸

침대에 누워있던 오노는 따스한 햇살에 그동안 감겨있던 눈을 떴다. 아직 졸린채였는지 손을 들어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제 왼쪽으로 만져보자, 밤새 제 옆에 꼬옥 붙어서 자고 있던 사쿠라이 쇼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널부러진 이불, 따스함이 사라져버린 침대. 그 위에 앉아서 오노는 다시 잠이 찾아오는지 두 눈을 깜박였다.

 

" 쇼군...? "

 

 아니나 다를까 살짝 열려진 방문 바깥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킁킁거리며 맡아보자 무언가 새까매지는 듯한, 타는 냄새가 솔솔 났다. 거기에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오노의 고막에 울렸다. 다시 잘까 고민했던 생각이 싹 가시는 소리였다. 기지개를 쭉 펴면서 나가보자 사쿠라이가 하얀 프릴이 달린 에이프런을 두른채 계란후라이를 굽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퍼지는 연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노가 식탁에 앉자 사쿠라이가 에이프런을 벗지 않은 채로 접시 두 개를 들고왔다. 구운 식빵에 올라간 베이컨과 계란후라이. 그나마 저에게는 조금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었는지 계란후라이가 다른 한 개에 비해 조금 덜 탄 듯 보였다. 오노가 포크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점심이었다. 베이컨은 너무 많이 익혔는지 쪼글쪼글해져서 딱딱했고, 계란후라이는 소금을 쏟았는지 짭짤함을 넘어 짠맛이 혀를 쿡쿡 찔러댔다. 그나마 가장 맛있는 것이 토스트기에 돌린 따끈한 식빵이었다. 

 

 하지만 괴식스러운 입맛을 가진 오노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쿠라이에게 맛있어! 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에 사쿠라이는 웃으면서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몇 번 먹다가 자신이 만든 끔찍하게 맛없는 요리에 콜록거리기 일쑤였다. 식도에 넘어갈락 말락 씨름을 벌이던 음식물이 꿀꺽 삼켜지고, 오노의 말에 내심 기대했던 사쿠라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사쿠라이도 오노의 입맛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요리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사쿠라이의 입맛은 오노만큼 괴식은 아니었지만 꿋꿋이 접시에 올려진 음식들을 비워나갔다.

 

" 쇼군, 오늘 뭐해? "

 

 식빵조각을 입 안에 우물거리면서 오노가 물었다. 사쿠라이와 오노는 같이 동거하는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생활패턴이 많이 달랐다. 사쿠라이는 하루를 일일이 시간별로 일정을 나눠 체크하는 편이었고, 오노는 몇 가지 약속이나 큰 틀을 세워놓는 것 외에는 세세하게 일정을 나누지 않았다. 둘이 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사쿠라이의 일정을 비워야만 했다. 사쿠라이는 평일엔 몸이 다섯 개가 되어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가도 오늘같은 주말에는 제 연인과 같이 하루를 지내기 위해서 특별한 약속이나 일정을 만들지 않았다. 

 

" …글쎄요, 영화 한 편 보고 장 보러갈까요? "

 

 저녁에는 전골 어때요? 고기랑 야채를 가득 넣어서요. 사쿠라이가 나지막히 덧붙었다. 

 

" 응, 좋아. "

 

 주로 사쿠라이가 의견을 말하고 오노가 따르는 편이었다. 가끔씩 전시회나 미술관을 가자며 고집을 부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묵묵히 사쿠라이의 의견을 따랐다. 사쿠라이는 음식물을 넣어 볼록하게 솟아오른 오노의 볼을 귀엽다고 생각하고서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서 이제서야 기억이 났는지 에이프런을 벗어 잘 접었다.

 

 쇼군, 에이프런 잘 어울렸는데. 아쉽다. 남은 음식물 마저 씹어 삼킨 오노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접시와 포크를 겹쳐놓고 머그컵과 함께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사쿠라이는 제 뒤를 계속 졸졸 쫓아오더니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오노는 배에 사쿠라이의 팔이 겁쳐진 채로 불편하게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접시 두 개에 컵 두 잔. 포크에 후라이팬까지. 워낙 양이 적어 빠르게 끝낸 뒤, 옆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 …쇼군, 불편해. "

 

오노가 입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 네, 오노상. "

 

 가볍게 웃음을 흘린 사쿠라이는 손을 놓지 않았다. 뒤뚱, 뒤뚱. 안은 채로 이동하자 움직임이 더뎠다. 불편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노는 두 손을 제 배 위에 올려져 있는 사쿠라이의 손을 잡았다. 워낙 열이 많은 체질인지, 방금 설거지를 끝마쳐서 조금 차가웠던 탓인지 손의 열기가 훅 느껴졌다.

 

 쇼파의 앉아 폭신함을 느낀 후에 오노는 곧장 사쿠라이의 어깨에 기댔다. 사쿠라이는 제 왼쪽 어깨를 오노에게 내준 채, 오른쪽 손으로 리모컨을 들었다. 영화 리스트를 쭉 훑은 뒤에 조금 괜찮아 보이는 영화를 찾고서 이거 볼까요? 하고 작게 속삭이자, 오노가 작게 내는 허락의 소리를 듣고서야 영화의 시작 버튼을 클릭했다. 벌써부터 오노의 눈은 껌뻑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영화가 시작하자 어떻게든 눈을 떠보려 하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삼십분이 채 안가서 오노의 눈은 꼬옥 닫혔다. 간간히 오노를 살펴보다가 잠시 영화에 집중하고 있던 사쿠라이는 잠들어버린 오노를 확인하고서는 영화를 꺼버렸다. 영화를 보려는게 목적이 아니었거니 점점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영화는 다음에도 볼 수 있다. 

 

 쇼파 옆에 놓여진 담요로 오노의 몸에 두르고서는 옆에서 함께 낮잠을 청했다. 집 안은 따뜻했고, 쇼파는 폭신해서 어쩐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도 점점 오노상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잠들자 집안은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먼저 눈을 뜬 것은 오노였다. 그로부터 세 시간 뒤에 깨어난 오노는 제 몸에 덮혀져 있는 담요를 사쿠라이에게 그대로 덮여준 뒤에 부엌으로 향했다. 사쿠라이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오늘 마트는 못 갈지도. 라고 생각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조금씩 남은 야채들을 모조리 다 꺼내서 손질하고 냄비에 차곡차곡 쌓았다. 야채 가짓수가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저녁 준비를 얼추 끝낸 오노는 다시 쇼파로 향해 사쿠라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조금 흩어진 머리카락이 거슬려 가지런히 정리해주자 사쿠라이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아, 이제 일어나겠다. 

 

" 오노상…? "

 

 사쿠라이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슬적 뜨였다. 평소보다 덜 뜨인 눈. 어쩐지 전보다 조금 부어보이는 듯한 얼굴에 오노는 푸핫, 하고 짧게 웃으며 사쿠라이의 양 볼을 잡았다. 

 

" 밥 먹자, 쇼군. "

 

" …밥이요? 벌써 준비했어요? …저 깨워주시지. "

 

 가벼운 칭얼거림으로, 사쿠라이의 두 팔이 오노의 목에 둘러 끌어안았다. 난데없이 끌어당겨진 오노의 한 쪽 무릎이 쇼파 위에 올라갔다. 가까워진 탓에 깨어난지 얼마 안된 사쿠라이의 푹 잠긴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굵은 목소리가 오노의 고막을 묘하게 긁어내렸다.

 

" 응, 미안. 너무 피곤해보여서. 여기서 밥 먹을까? "   

 

 네. 짧게 덧붙인 사쿠라이가 눈을 껌뻑이면서 일어섰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담요가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떨어졌다. 얼굴을 맞댄 오노가 눈을 접어 웃었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웃는거지.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사쿠라이가 오노의 두 볼을 쭈욱 늘렸다. 볼은 말랑했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촉감이었다. 사쿠라이가 볼을 꾸욱 누르자, 움푹 들어간 볼이 귀여웠다.

 

" 술도 마실까? "

 

 사쿠라이의 눈썹이 움찔, 움직였다. 입도 함께 삐죽 튀어나왔다. 오노는 그런 사쿠라이의 입술을 꾸욱 눌렀다. 잔소리할게 뻔하기 때문에. 자고 일어난 상태의 입술은 조금 푸석했다. 제 주머니에 넣은 립밤을 발라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 …오노상, 술 좀 그만 마셔요.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

 

 입이 막힌 상태에서도 사쿠라이는 복화술이라도 익힌 것인지 잘도 말했다. 조금 웅얼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점이 잔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오노는 가볍게 무시했다. 제 목에 둘러진 사쿠라이의 손을 풀어 내리고서 조금 들뜬 발걸음으로 냉장고에서 술을 꺼냈다. 오랜 시간 냉장된 술은 차가웠다. 술을 잡은 오노의 손도 금세 차가워졌다.

 

 " 쇼군, 이런 날에는 마셔줘야지. "

 

" 그거. 거의 매주 하는 말인데요. "

 

 오노가 유리로 만들어진 컵을 꺼내 술을 따라 마셨다. 사쿠라이는 양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매번 같은 말로 변명하는 제 애인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담요를 주워 쇼파 위에 올려놓고서 오노를 따라 앞에 섰다. 크으, 가볍게 한 잔을 들이킨 오노는 표정을 찡그렸다. 한쪽 눈이 접혀져서 꼭 제게 윙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술맛의 여운을 느끼던 오노가 술을 다시 컵에 가득 따랐다.

 

 제 앞에서 술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사쿠라이는 다시 뚱한 표정을 안 지을 수 없었다. 별안간 그 표정을 발견한 오노가 한 손으로 사쿠라이의 볼을 잡았다. 차가워진 오노의 손이 사쿠라이에게 닿자 살짝 흠칫했다. 차가워. 생각이 가시기도 전에 오노의 입이 사쿠라이의 입을 짧게 맞췄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사쿠라이는 목끝까지 아쉽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물기를 머금은 입술은 촉촉했다. 아쉬움에 입술을 할짝이자, 씁쓸한 술맛이 옅게 느껴졌다. 

 

" 쇼군도 공범이야. "

 

 후훙. 오노가 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술은 어느새 반 병이 비워져 있었다. 연달아 빠른 속도로 술을 들이켜마신 오노의 눈이 조금 풀린 듯 보였다. 어느새 귀가 붉게, 얼굴이 점차 붉은 빛으로 달아올랐다.

 

" 좋네요, 그 공범. "

 

 이런 공범은 환영이에요. 가볍게 덧붙인 사쿠라이가 다시 쪼옥, 입을 맞췄다. 차가운 술이 들은 잔이 장시간 따뜻한 집 안에 노출되자, 유리잔에 물방울이 송글송글하게 맺혔다. 간신히 컵에 달라붙어 유지하고 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컵 주위에 둥글게 자국을 만들어 냈다. 이번 입맞춤은 좀 더 오래갔다. 씁쓸한 술 맛이 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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